케이티, 골을 넣지 못해도 아빠가 1달러 줄게

0
126
1,794

초등학교 1학년, 반 축구 모임이 결성되었었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향해 사랑과 기대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아이 앞으로 축구공이 왔고 저는 내심 아이가 팡~ 하고 날려 골을 넣어주길 기대했지만 아이는 갑자기 공을 피해 도망가버렸습니다. 

애써 웃으며 공을 피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엄마 다른 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싶어 해요. 저는 공이 없어도 괜찮아요. 왜 다른 사람의 공을 뺏어야 해요?”
이 대답을 한 아이에게 축구를 못해도 된다는 마음을 부모인 제가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남자아이라고 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니까요~


“조시, 우리 아이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어떤 아빠가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아요.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자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듣게 설명해줘요.
하지만 아이들은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아빠처럼 아이에게 책임을 묻는 것부터 시작하는 아빠가 많다.
마치 규칙을 지키는 일이 착수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규칙을 강조하고, 지침을 내리며, 책임 묻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실은 책임을 묻기 전에 용납의 기초부터 쌓아야 한다.
용납은 관계의 토대이다.
책임감을 가르치는 교육은 반드시 용납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용납은 관계의 토대이다.

아이는 큰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러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끼고 알아야 용납을 느낀다.
그리고 아빠의 용납을 깨달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과 성과에 상관없이 아빠의 태도는 변함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아빠의 용납은 한결같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에게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음을 느낀다.

아빠들은 대부분 그런 아빠가 되기위해 노력한다고 말할 것이고, 그런 아빠라고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아빠가 아이의 성과에 기초해 조건적으로 아이를 용납한다.

즉, 아이는 ‘착해야'(바르게 행동해야) 아빠의 용납을 받을 수 있다.
아이가 실수하고 잘못하고 반항하고 떼쓰면, 적어도 잠깐 아빠의 용납은 사라진다.
아빠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미세하게 차갑게 대하면 아이는 금방 알아차린다.
아빠가 성과에 상관없이 아이를 용납하려면 성과가 아닌 아이에 집중해야한다.

케이티는 여섯 살 어린 나이인데도 축구를 아주 잘했다.
그해 시즌의 어떤 중요한 시합 전에, 가볍게 몸을 푼 케이티는 관중석으로 달려왔다.
“아빠, 내가 골을 넣으면 1달러 주실 거예요?”
“물론이지.”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야, 신난다!”
케이티가 말했다. 여섯 살 아이에게 한 골에 1달러는 프로농구 다년계약처럼 들린다.

“잠깐.”
나는 케이티가 돌아가기 전에 팔을 잡았다.

“골을 넣지 못해도 아빠가 1달러 줄게.”
“정말?”
“정말.”
“야, 신난다!”

케이티가 시합을 하러 달려가기 전에 다시 말했다.
“잠깐,”
나는 케이티를 불렀다.
“아빠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알아?”
여섯 살 난 내 딸은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나는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내가 케이티를 무조건적으로 용납한다는 것을 일깨워왔지만,
그 아이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케이티는 뒤돌아서서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럼요, 내가 축구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아빠가 날 사랑하니까요!”
그 순간 나는 세상을 전부 얻은 것처럼 기뻤다.
그 경기에서 케이티가 골을 넣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상관없었다.
아빠의 사랑은 성과와 상관없다는 것을 케이티가 알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녀는 성과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10가지 약속>조시 맥도웰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