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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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기에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되지 않았고, 결혼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냥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수용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이해가 되면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 같았기에 주님께 이유를 물었지만 알 수 없었기에 좌절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차라리 혼자 살았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이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이 아닌 걸 알았을 때 가정을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으로 인하여 힘든 상황이 있다면 주님을 먼저 신뢰하며 나아가는 시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아직 젊고 어리석을 때 아내와 출산의 고통에 대한 토론을 했다.
아내는 만약 남자들이 해산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면 절대로 세상의 인구가 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조사를 통해, 그나마 신장 결석이 산고와 가장 비슷한 통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순전히 육체적인 면에서, 신장 결석과 출산은 고통의 정도가 꽤 근접한 두 사건이다.
남자들에게 신장 결석이 꽤 자주 생긴다는 걸 알고, 나는 아내에게 이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종의 절반인 남성들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걸 그녀가 어느 정도 인정할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 증거를 생각해보더니, 이 연구를 한 사람은 10시간 넘게 진통을 하고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매우 훌륭한 지적을 했다.

“고통을 선택하는 것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어.”
어떤 남자도 신장 결석이 발생하는 것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여자들은 의식적으로 고통을 견디기로 선택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난 신장 결석이 발생하는 게 기대돼.”라고 말한 남자는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좋은 지적을 했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겪기로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겪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강인함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왜 여자는 고통 겪는 것을 선택하는가?
그것은 그 고통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통이 가져올 결과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에 기꺼이 고통을 감내한다.

실제로 극심한 산고를 겪은 후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참고 견딘 보람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또다시 임신의 축복을 주시길 기대해요.”
하지만 신장 결석을 배출한 남성 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산의 고통이 신장 결석의 고통과 다른 점은 가치 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고통에서 나오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고통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견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이 삶에서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다. 고통은 좋은 것을 낳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 해답을 찾으며 목사인 나를 찾아온다. 내가 종종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이런 말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이 일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삶의 고통이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
그 뒤에 감춰진 이유가 있다면, 고통이 그렇게 해롭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항상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이유가 있다 해도 우리가 항상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재구성하도록 권면하려고 노력해왔다.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나는 항상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의 은혜 안에서 항상 목적을 갖고 계신다는 것은 알기 때문이다.
‘이유’와 ‘목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를 찾지만,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주목한다. 이유는 일어난 일을 이해하게 해줄 논리적 설명을 원한다.

목적은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하나님이 선을 이루실 수 있다는 소망을 우리에게 준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우연히 만나셨을 때(요한복음 9장), 또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누가복음 13장)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는가?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 물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설명해주십시오.”
사람들은 이유를 알기 원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여러 말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여기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라”고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유를 말씀해주지 않으셨지만, 목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시켜 주셨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바로 우리의 고통이 아무 목적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역사하셔서 우리가 더욱더 예수님을 닮게 하실 수 있다.
<은혜가 더 크다> p225카일아이드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