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아니라 선물이다.

1
132
2,906

보기만 해도 좋고 사랑스럽던 아이가 어느 날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며 ‘그래, 사춘기다. 지나갈 거야’라고 수없이 참아 보지만 사랑한 만큼 아이에게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오늘 하루 아이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께 감사하며 선물처럼 받은 오늘이라는 시간과 이해하기 힘든 괴물이 아닌 선물로 아이를 위해 품어주는 오늘 되기를 기도합니다.


쉴 곳 없는 아이가 가장 불쌍하다.
가정과 가족은 아이가 쉴 곳이다. 가족이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느낀다면 그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려고 더 극단적인 생각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겠지만 사실은 아주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사춘기는 선물이다

이것은 유진 피터슨의 말이다.
부모의 불평이나 고집으로 낭비할 시간이 아니고,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성숙하고 거룩하게 되는 특별한 기회이다. 하지만 그 맛은 쓰다.
사춘기 아이들은 유난히 예민하고 짜증도 많다. 더구나 자기편인지 남의 편인지 분간도 하지 않고 신경질을 마구 부린다. 부모의 참을성은 한계에 부딪힌다.

“너, 엄마한테 왜 이래?”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동생한테 그렇게 심하게 말하면 어떡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렇게 호통칠 일이 생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아이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정도의 반항이라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말버릇을 그대로 두라는 뜻은 아니다.
부부는 한 팀이 되어 필요에 따라 단호하게 훈육해야 한다. 두 사람에게서 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평소에 한 사람은 꾸중하는 역할, 다른 한 사람은 아이를 대신해서 변명하는 역할을 고정적으로 하게 되면, 아이는 두 사람의 차이를 이용해서 자기 마음대로 자란다.

실수했을 때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는 지체하지 말고 반드시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아이들도 자신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말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고통을 주는지 알아야 한다.
날카로운 말은 독백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부모 자신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 알려 주어야 한다.

훈계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가 아니면 잔소리는 신속하게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
아빠, 엄마의 목소리가 높으면 아이는 억울해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손찌검이든, 베개라도 던지며 화를 냈든, 만일 조금의 폭력이라도 행한 적이 있다면 엄마, 아빠는 반드시 사과해야한다. 아이가 성장한 이후에라도 사과는 늦지 않다.
“그때는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다. 정말 미안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하지만 너도 엄마, 아빠에게 대드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인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아이에게 사과해보자. 아이는 소중하다. 아이도 부모의 사과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늦은 사과란 없다.
오늘, 지금 바로 사과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가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것 역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다.
아이 역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 일은 지금 여기, 가정에서 시작된다.
<다시 시작하는 엄마수업>p127 하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