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려고만하면 왜 자꾸 세상과 부딪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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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우리 가정 가운데서 생명을 잃고 어느덧 세상이 말하는 소리를 더 신뢰하게 됩니다. 진리와 반대되는 이야기 일지라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영이 깨어 있지 않으면 가정은 세상 가운데 표류합니다. 우리 가정이 깨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진리에 눈을 떠야 한다. 세상의 문화가 승리하고 있다.
진리는 그것을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외쳐야 할 사람들이 더는 외치지 않거나 외치려고 하지 않을 때에만 패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로서 진리를 무시하면 안 된다. 우리가 침묵하면 원수 사탄의 거짓말이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식별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또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관한 우리의 성경적인 입장들을 소멸시키길 원하는 원수 사탄의 거짓 선전을 믿으면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저런 결정들을 할 때 이유와 변명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누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성경 시대는 옛날이었잖아! 세상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었어. 오늘을 사는 사람이면 오늘의 문화를 따라가야지!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 거야!

심지어 이러한 합리화가 우리의 가정에까지 번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싶지 않아.
내 자식들도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뭐!
이런 영화 저런 영화 골고루 봐야지!
실제로 행동만 하지 않으면 그냥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아?
나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권리를 갖고 있어!
남들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아!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면 그것은 성령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이런 자기 합리화를 통해 성령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내가 성령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세상에 정신을 팔면서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을 제압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엄히 경고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7,8).
성령께서는 당신 안에 거주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그것을 ‘내적인 음성’이라고 한다.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하나님께서는 계속 당신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정말로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고통의 길로 가지 않게끔 막아주려고 힘쓰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에 반대하는 분이 아니라 고통에 반대하는 분이시다.
세상은 당신을 세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
세상 문화의 영향력이 계속 당신을 비웃으면서 당신에게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에 근거한 세계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에 일치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나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세상 문화가 우리를 소유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세상에 무릎꿇지 않는자; 남은자>p111 팻 쉐츨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