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모리 : 우리에겐 분명한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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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마다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생일이 돌아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태어난 그날을 축하하며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죠.

나이를 먹을수록 돌아오는 생일을 기념하며, 가끔 생각에 잠깁니다. ‘내년에도 내 생일을 이렇게 또 기뻐할 수 있을까?’하고요.

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에서 점점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있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고 떨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역시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랍몰의 ‘죽음을 배우다’라는 책을 접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 죽음을 통해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길 기도합니다.


1.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의 과정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실하게 죽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통해 신앙을 표현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죽으셨으며, 무덤에서 일어나셨고 그분께 소망을 둔 모든 사람이 다시 일어나리라는 확신 말이다.

좋은 죽음이란, 영생을 바라는 소망을 신실하게 표현하려 애쓰는 것이다. 교회가 좋은 죽음이라는 비전을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미처 준비가 되지도 않은 동료 신자들을 영생으로 향하는 여정에 내보내고 있다.


2.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역사 내내 의도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실행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보살피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좋은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날 밤 감람산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제자들도 준비시키셨다.


3. (그때가 일찍 찾아오건 늦게 찾아오건) 임종 관련 논의를 속히 시작하고 자주 할수록 우리 자신과 가족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도 더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손을 쓸 수 없을 때 흔히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실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희망을 줄 수 있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우리 삶이 아름답고 목적이 있으며 축복받았다는 희망 말이다.


4. 모든 신자는 어려운 시기가 닥치기 전에 욥의 교훈과 시편의 위로, 부활의 약속을 배워야 한다. 교회 내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지속될 깊이 있는 관계를 양성해야 한다.

죽음이 기술인 까닭은 하나님이 죽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분 손에서만 추하고 끔찍한 것이 아름답고 목적 있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은 부활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들어가고, 세례의 물 가운데 부활에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연습하고 다른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손을 찾는 과정을 보살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분은 죽음을 통과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반가이 맞이하신다.

내용 발췌 = 죽음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