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를 잃었다가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찾았어. 그러니 넌 더블(double)로 내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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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커갈수록 바빠지고 할일도 많아 집니다. 왜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달려가는것 같기도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좌절하고 낙심할 때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과로서 너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그분에게는 너무 귀한 존재라는 것을, 그것을 잊지 말기를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속하다’라는 단어는 영어로 ‘redeem’입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대가를 치르고 내 것으로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으로, 자신의 것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을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오래전 아프리카 원주민 청년이 여러 날 공을 들여 집 앞 강에서 타고 다닐 카누를 만들었습니다. 손수 만든 배였기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우가 몰아치던 어느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가보니 카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애타는 마음으로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 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하류 마을의 어느 집 앞에 묶여 있는 카누를 발견했습니다. 청년은 한눈에 자신이 만든 배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집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했지만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그 배를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배를 찾아왔습니다. 그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청년은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배야, 난 너를 만들었고 잃었다가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샀어. 그러니 넌 더블(double)로 내 것이야.”
이사야서 43장 1-3절의 내용이 바로 이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1절과 3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에디오피아, 과거 애굽의 일부)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_이사야 43:1,3

이 말씀은 과거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하게 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값비싼 대가가 지불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많은 애굽인이 희생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구원을 값없이 받았지만, 우리의 값없는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린 희생을 담보로 한 고귀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값없음’을 ‘free grace’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나치와 싸우다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free grace’를 잘못 해석하면 ‘cheap grace’(값싼 은혜)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예수의 은혜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은혜, 곧 ‘priceless grace’(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은혜) 혹은 ‘costly grace’(값비싼 은혜)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의 대가로 구속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내 것이라고, 내 소중한 보배라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제의 예언 오늘의 복음>이동원p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