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고 물으신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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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언제나 오래된 속임수에 걸려든다. 우리는 초월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망각한 채 훨씬 하찮은 것들을 마치 중요한 것인 양 여긴다.

그 대가는 아담과 하와가 치른 것만큼이나 엄청나다. 남자들은 아버지가 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초월적인 영광을 망각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직업적 성공이라는 영광으로 대체한다. 그의 인생은 점점 더 일에 잠식당하고 규정된다.

청년들은 구원자의 임재와 능력과 은혜 안에 뿌리내린 정체성을 가질 때 초월적인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망각한다. 대신 친구들의 안정이라는 가짜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날마다 동행할 때 갖게 되는 초월적인 영광 대신 동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택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짐으로써 발견하게 될 거라고 소망하는 것들은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대적의 거짓말을 조심하라. 

대적이 어떻게든 당신을 속여서 당신의 삶이 개인적으로 꿈꾸고, 원하고, 필요로 하는 크기만큼으로 축소된다면, 그것이 대적이 원하던 바다.

대적이 당신을 유혹하여 당신이 창조된 목적인 하나님 중심의 더 나은 삶을 버리고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 앞에 어른거리는 수없이 많은 나 중심의 ‘더 나은 것’들을 택하게 할 때마다 대적이 승리하는 것이다. 대적의 거짓말은 이런 식이다.

너를 중심으로 살아갈 때
초월을 찾게 될 거야

성경에 대해 알고 교회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지만, 우리가 창조된 목적인 초월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들을 위해 매일의 삶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무슨 옷을 입을지, 뭘 먹을지, 일정을 어떻게 잡을지, 일이 많은지 적은지, 집은 어디에 구할지 등이 어느 순간 영적으로 위험한 수준까지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날마다 살아가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매 순간 이런 사소한 일들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면 피조물이 갖는 일시적인 그림자 영광을 위해 초월을 저버리는 꼴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늘 싸워온 싸움이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구하고 있는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 몇 주를 한번 돌아보라. 무엇에 따라 결정정하고 행동했는가? 바른 신학을 갖고 있고, 신앙 모임에도 충실히 나가고, 교회 사역에도 열심을 냈지만 당신의 삶이 초월을 축소시키지는 않았는가? ‘덜 중한 것’을 위해 ‘더 나은 것’을 버리지는 않았는가?

진정한 인간성은 늘 영광과 연결되어 있고, 진정한 영광은 영광 자체이신 주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중에 있다. 어떤 때는 이 영광을 누리며 살다가 종종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떤 때는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미끼를 물고 덜 중요한 것을 마치 더 중요한 것인 양 따르기도 한다. 은혜로 영광에 이르도록 우리의 경계가 넓혀졌는데도, 여전히 우리 삶의 경계를 자신만의 삶으로 축소시킬 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초월적인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았다. 삶의 가장 큰 질문은 ‘매일 어떤 영광을 구하며 살 것인가?’이다.

내용 발췌 =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