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깨닫는 방법

자애와 자기중심주의를 구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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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땅콩, 축구, 따뜻한 날씨, 나의 아내와 아이들, 좋은 책, 즐거운 대화,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나의 이런 사랑의 대상들에 따라 나의 사랑의 강도와 헌신의 정도가 서로 달라진다. 내가 땅콩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동안 땅콩을 먹지 못한다고 해서 분노하지는 않는다. 주일 오후에 텔레비전의 축구 중계를 규칙적으로 볼 정도로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그러나 주일 오후에 가족과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과감하게 축구 시청을 포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기 위해 주일 오전 예배를 빼먹는 것을 금한다.

긍정적 의미의 ‘자애’에 도달하려면
자애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 역시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결과, 성경에서 ‘자기’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느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생기게 된다.

성경에서 자애와 자기중심주의는 대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이야기하는데, 이 모습들은 모두 명백한 자기중심주의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 3:2-5).

그러나 여기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다른 종류의 자애를 암시하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가르치셨는데, 이 교훈의 초점은 ‘이웃 사랑’이지만, 이 말씀 속에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사도 바울도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9)라고 말했다.

이 두 말씀에서 언급하는 자기보존은 당연히 필요한 선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자애는 방종이나 탐닉이 아니다. 결국 자애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긍정적 의미의 ‘자애’에 도달하려면 우선 자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확한 자기 이해의 출발점은 하나님이시다.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하기를 원하신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당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가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기를 원하셨고,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

다윗은 “주께서 내 장부(臟腑)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본래의 옷을 더럽혔다. 우리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며,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이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성경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자기의 본질을 깨닫고 혐오감과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라고, 욥은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고 말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을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말했다.

죄를 깨닫고 슬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에 대해 죄책감과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다.

당신이 그분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라. 당신 자신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돌봐라. 그런 다음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라고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결코 막히지 않는다.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내용 발췌 = 기독교교양 : 래리 크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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