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화는 깊은 관계로 이끈다

친교가 사실은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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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일했던 그리스도인 친구가 있다. 그곳에 개인적인 곤경에 처한 요리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에게 다가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혹시 교회에 다니시나요?” 하고 물었다.

요리사가 말했다. “아니요. 다니려고 했죠. 언젠가 교회에 나갔지만, 교회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어요. 그 후로 한 번도 안 갔어요.”

친구가 말했다. “교회에 다시 나가 볼 생각은 없나요? 이번에는 저랑 같이요.” 요리사가 잠시 생각을 하고는 “ 좋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라고 대답했다.

다음 주일에 요리사는 내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갔다. 그 후로 내 친구는 매주 토요일 밤에 요리사에게 전화해서 주일에 교회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요리사는 그렇게 했다. 여러 주가 지났고,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대화가 점점 더 편해졌다.

친구는 자신의 가정교회에 요리사를 초청했는데 그는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교회 사람들 중에는 짜증나는 이들이 더러 있어요”라고 말하며 거부했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요리사는 계속 교회에 나갔다. 마침내 그는 내 친구와 함께 가정교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요리사는 가정교회의 구성원들이 몹시 친절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반기고 그를 환영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정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자신의 삶을 나누었다. 그들은 야구광인 요리사를 위해 자기 집에서 월드시리즈를 함께 보자며 그를 초청했다. 차츰 영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요리사가 복음을 들을 준비를 갖추자 가정교회 리더는 거듭해 그에게 복음을 전했고, 얼마 후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초대교회가 상심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관계로써 끌어당겼듯이,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 의미와 관계적인 연결을 필요로 하고 바라도록 지으셨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한 사랑을 볼 때 관심을 기울인다. 문제는 많은 비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진실한 관계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리사가 처음에 그랬듯이 그들은 이미 교회에 가서 시도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관계는 조건적이다. 그 관계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네가 주는지’의 여부에 근거한다. 만일 당신이 실수를 저지르고서 그것을 알리면 관계가 깨진다.

물론 이 원칙에는 예외가 있으며, 비그리스도인들도 관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와는 다르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둘 다를 경험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관계를 절실히 갈망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진실한 관계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자동적으로 근사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은 성화 과정의 일부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성화는 깊은 관계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만일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서도 사랑을 단순히 근사한 개념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르도록 하신다. 비록 우리는 죄성을 지녔지만,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를 거부하고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사랑에는 수고가 요구된다. 사랑에는 이타심이 요구된다. 사랑은 우리 자신의 필요를 제치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수반한다. 하나님이 사랑을 계획하셨고 사랑으로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살며 우리를 통해 이 사랑이 흘러 나가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명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셈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것을 받게 된다.

내용 발췌 = 교회는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