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나 유혹을 만날 때, 예수님을 통해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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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유혹은 모든 신자들이 다 경험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유혹)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유혹받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누구도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유혹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 나은 질문이 있다.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 유혹을 다루는 방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혹을 다룰 때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유혹에 쉽게 굴복한다. 이들은 “유혹과 싸울 이유가 어디 있어?”라는 태도를 취한다.

이들은 “나는 유혹만 빼고는 뭐든 이길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이들은 “좋다고 느끼면 그렇게 해!”라고 말하는 가치관을 선택했다. 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좀 더 세련화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 옳다.”
이들은 오직 자기만족과 자기보존과 자기선전에만 신경 쓴다.

사람들이 유혹을 다루는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힘으로 유혹을 이기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방법만큼 잘못되고 쓸데없는 것이다. 어느 농부의 사과나무 밑에 앉아 있는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농부가 지나가다가 소년에게 말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사과를 훔치려는 거구나!”
소년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저씨, 훔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빠져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유혹의 맹공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유혹을 다루는 세 번째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혹을 이기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받는 유혹은 누구나 다 받는 것이라고 말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유혹)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맞서지 말고 피하라
유혹은 세 부분, 곧 몸(body)이나 혼(soul)이나 영(spirit) 가운데 하나를 공격한다. 몸 자체가 악하거나 죄악된 것은 아니지만 몸은 유혹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혼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태도로 죄를 지을 수 있다. 영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부분인데, 우리는 영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요 4:24).

우리는 이러한 세 부분에서 유혹을 받을 때 어떤 충동이나 자극을 통해 유혹을 받는다. 예를 들면, 술취함, 무자비, 폭력, 성적 부도덕과 같은 것들은 육신의 죄이다. 이것들은 몸을 통해 표현된다.

영(靈)은 세상의 유혹을 받는다. 세상은 영, 곧 우리 본성의 정서적, 의지적, 지적인 부분이 하나님의 가치 체계와는 반대되는 세상의 가치 체계를 따르게 하려 한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말한 대로 이 세상에 붙잡혀 있고 “이 세대(world)를 본받는” 자들이다.

사탄은 우리의 영과 전쟁을 벌인다. 사탄은 실제로 우리가 간음과 같은 짓을 하게 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이 술에 취해 하수구에 빠지게 하는 게 아니라 명예롭고 즐겁고 생산적이면서도 경건하지 못한(하나님 없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사탄이 하려는 일은 우리와 하나님을 갈라놓고, 우리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갈라놓는 것이다. 그는 주로 우리의 영적 관계를 대상으로 싸움을 벌인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의 자리와 출처를 안다면 유혹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혹을 당할 때 그 유혹이 어떤 것인지 분석해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당하는 유혹은 어디서 온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유혹을 만나면 붙잡고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피할 길”은 왕의 대로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고린도전서 6장 18절은 “음행을 피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특히 유혹적인 상황에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하는 길뿐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 했을 때, 요셉은 도망쳤다. 이러한 종류의 유혹이 찾아올 때, 우리는 최고의 겁쟁이가 되어야 한다. 대학시절, 내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미끄러운 곳에 가지 말라.”

유혹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유혹하는 분위기를 피하며, 모든 종류의 육적 유혹을 피하라.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이것들과 맞서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피해 도망하라고 말한다.

#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라
다른 한편으로, 유혹이 우리의 영과 맞서 싸우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며, 예수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러한 종류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다시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있으며 아버지의 사랑이 정말로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이 필요 없다.

사탄은 내 믿음을 공격하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공격할 때가 많다. 이러한 유혹과 싸우기 위해,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가 필요하다(엡 6:16).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사탄이 내 믿음을 공격하거나 내 앞에서 주 예수님을 비난하려 하거나 내가 의심하게 만들려고 할 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나는 그를 제어하는 권세를 가질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탄아,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를 대적한다. 나는 너를 거부하고, 꾸짖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는 내 삶에서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권세도 없다. 내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다. 너는 내 아버지의 소유지를 침범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내가 이렇게 하면, 사탄은 내게서 도망칠 것이다. 그러므로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유혹을 이기려 하지도 말라. 예수님을 통해 이겨라. 유혹을 받을 때, 당신이 몸과 혼과 영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 유혹받고 있는지 살펴라. 그런 후에 거기에 맞게 유혹에 대처하라.

내용 발췌 = 기독교교양 : 아드리안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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