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텝 #05] 어느 퇴근길의 우연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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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을 빠져나와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10 년이 넘게 반복해온 익숙한 동작으로 긴 줄의 끝에 섰다.

괜한 조바심으로 버스가 오는 쪽의 자동차 불빛들을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었다. 노트북이 든 가방은 아침보다 두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해결하지 못한 회사 일들로 마음은 더 무거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씻고 먹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동시에 문득 이런 일상이 지겹다는 생각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거라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을 벗어났다. 그리고 한 번 도 가본 적 없는 개천의 산책로로 내려갔다. 북적대던 사람과 자동차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녹색 보도와 갈색 자전거 길을 따라 난 억새와 풀숲이 나를 반겼다.

나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유유히 맑게 흐르는 탄천의 물을 감상하면서, 그 물 위를 노니는 오리와 잉어들의 그림자를 보면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가 아닌 두 발로 걸어 퇴근을 했다. 집까지 가는 데는 30분이 걸렸다. 마을버스로는 20분쯤 걸리던 길이었다. 겨우 10분 차이였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그날도 두 번의 미팅과 한 번의 강의로 지친 몸을 끌고 지하철 역사를 나왔다. 비가 오는 밤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익숙한 녹색 보도를 따라 걸었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팟캐스트를 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더 드라마’를 클릭했다. 작가와 PD들이 평소에 즐겨 보는 드라마를 놓고 수다를 떠는 팟캐스트였다. 그날의 주제는 ‘2화 남았는데 범인 대체 누구냐! 비밀의 숲’ 특집이었다.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

아주 오랫동안 성공한 삶, 행복한 일상을 좇았다. 그래서 1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기도 했고, 직업을 바꾸는 무모한 도전도 했다. 주말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일해보기도 했고, 결국엔 지쳐 쓰러져 (공황장애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삶을 바꾸는 방법은 단 하나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그러지 않으면 루저가 될 것 같았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10년간 고민 없이 탔던 마을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다른 퇴근길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자신은 걸어서 퇴근한다고 했다. 아,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었지.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 보다 몇 배는 더 걸릴 퇴근을 감행할 용기가 없었다. 고작 마을 버스비 아끼려고 그 길을 걸어간다고? 차라리 그 시간에 빨리 씻고 쉬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걸어서 퇴근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순간 용기를 냈고 걸어서 퇴근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혼자 걸어서 가는 그 조용 한 퇴근길이 회복과 힐링의 시간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음악과 각양각색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숨어 있던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시간을 통해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만일 내가 그날의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처진 어깨로 마을버스를 힘없이 오르고 있을 것이다.

걸으면서 생긴 용기

왜 지난 10년간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았을까? 109번 마을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방법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만일 퇴근길 하나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이런 변화를 줄 수 있는 사소하고도 손쉬운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수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일단 걷기로 했다. 피로가 풀리고 생각이 맑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파김치가 되고 초주검이 되어야 마땅한 저녁 시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남다르게 해볼 용기가 생겨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1년 이상 매일 반복할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도전일 것, 하고 나면 뿌듯한 기분이 밀려드는 좋아하는 일일 것, 밀린 숙제 하는 듯한 부담이 오는 순간 그만둘 것. 그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한 스몰 스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글 = 박요철
7년간 브랜드 전문지의 에디터로 살다가 지금은 작지만 경쟁력 있는 회사들을 돕는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40대로 살던 어느 날, ‘남다른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1년에 100권씩 자기계발서를 섭렵하고 부와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과 실패감뿐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위기와 기회 모두는 하나님의 설계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재단하고 휘두르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가장 나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스몰 스텝이다. 남들이 열광하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거창한 계획이나 또 다른 자기계발이 아닌 작지만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3년 동안 매일 스몰 스텝을 실천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삶과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되찾았다. 지금은 스몰 스텝이 연결해준 가장 나다운 일인 글과 강의를 통해 삶의 비밀을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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