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토크 #05] 신이 존재하고 사랑이라면 왜 세상에 이렇게 고통이 많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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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그 말씀의 원리로 세상의 만물을 만드셨다. 그리고 사랑이신 그분은 이 사랑의 원리로 사람을 인격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시고 그와 교제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세상에 악과 고통,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기독교 진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있는 말씀들 중 웬만한 비기독교인들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이 바로 그 사랑 이야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이 구절의 첫 부분만 봐도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는 사랑인 것을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목적은 바로 그 세상을 사랑하시기 위해서이다.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우주’, ‘세속적’, 그리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이 말씀에서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말씀이시라고도 하지만 사랑이시라고도 분명하게 밝힌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16)

사랑이신 하나님은 사람도 자신의 사랑의 형상을 따라 지으셔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간에 사랑하며 살아가게 지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동물들과 달리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도덕의식이 있다. 사람만이 가진 양심은 동물과 달리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증거들 중 하나이다.

흔히들 죄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사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창조질서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도 이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을 드러내고 나눠주고자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다.

그런데 대등한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려면 사람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지으셔야 했고, 그래서 사람을 만드신 후에 그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셔야 했다.

희한하게도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이 선악과에 대해서는 한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하나님이 괜히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미끼로 삼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만들고 선악과는 만들지 않았다면, 굳이 사람을 만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을 만들어 에덴동산에 거주하게만 하고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사람은 스스로 인격적으로 선택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유를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그저 에덴동산의 단순한 관리인이나 하수인 같은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이렇게 분명히 경고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5-17)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사람을 단순한 종에서 주권에 자유롭게 순종하는 국민으로 승격시키려고 그의 자유의지를 발동시킬 위대한 시험에 올인 하셨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다음엔 그러지 마. 네가 불순종할 줄 알고 내가 저기 선악과를 또 하나 만들어놨다” 하셨다면 그것은 인간을 진정으로 존중해주는 처사가 아니다.

첫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는데도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아담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끊어져 영적으로 죽고 나중에는 육체적으로도 죽게 되지 않았다면? 또 그에 따라 이 세상에 악과 고통과 재난이 찾아오게 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와 인격을 제대로 존중해주시지 않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 재난이나 질병, 죽음 같은 것은 사실 하나님이 안 계신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이 인간을 진정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신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신 것도 아니다. 악은 창조될 수 있는 특정 피조물이 아니다. 선이 부족할 때 발생되는 종속적 관계의 특성을 갖고 있다.

구멍은 다른 물체가 있어서 그 일부의 결함으로 생기는 것이지 처음부터 구멍 자체로 생겨나거나 존재할 수 없다. 어둠은 빛의 부재요 차가움은 열의 부재인 것처럼 악은 선의 부재요 절대선인 하나님의 부재로 종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발생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보시기에 심히 좋은(창 1:31) 선한 세상을 만드셨다. 다만 인간을 고도의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셔야 했기 때문에 악이 발생될 가능성이 허락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악은 그 인간이 선택한 선의 부재로 발생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저지른 악과 죄를 조금도 용납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자의 범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