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해야해..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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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이라는 새로운 문 앞에서 걱정반 설레임 반속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아이들을 경쟁의 출발선에 세운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급학교에 가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진로를 준비하며 최선을 다해야해’라는 말을 당연한듯 아이에게 말했지만 과연 부모로서 이 마음이 하나님께로 온건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아이의 교육만큼 아이가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좋은 부모로서 신앙의 본을 보여 주고 있는지 아니면 신앙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주님의 말씀앞에 모든 영역을 주앞에 올려드리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에녹이 들림 받은 후 라멕이 노아를 낳았고, 노아는 오백 세가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안타깝게도 그때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인 가인의 후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합하여 육신이 된다.
육신이 된 결과 그들은 땅에서 명성 있는 용사가 되었을지언정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자들이 되어,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과 행사가 항상 악하여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땅에서 명성 있는 용사이나 하나님이 한탄하실 수밖에 없는 존재, 땅과 하늘의 관점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 관점이 중요하고 이 관점을 결정하는 인식의 기준이 중요하다.

보고 인식하는 관점은 우리 안에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변화된 삶을 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인식한 대로 산다. 마찬가지로 보고 인식한 수준만큼 산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말하는데, 이 세계관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가치체계와 사고체계를 통해 형성된다.

어떤 것을 가치 있고 가치 없다고 보는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사건과 일을 해석하는 나의 사고 기준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내 안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우리는 그렇게 보고 해석하는 대로 살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신앙생활을 땅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여전히 땅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다니엘서 말씀으로 자녀를 훈계하면서도 “그러니까 공부를 잘해야 돼. 높이 올라가 성공해야 영향력을 줄 수 있어.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거야”라고 하는데, 나 역시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니엘서를 아무리 봐도 그 말씀 어디에 공부를 잘해야 하고, 높이 올라가고, 성공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는지 좀처럼 공감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분들이, 다니엘의 친구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다니엘이 사자 굴에도 들어갔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땅의 관점이 아닌 하늘의 관점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늘의 관점을 회복할 수 있는가?

그럼 어떻게 해서 우리 안에 하늘의 관점을 회복할 수 있는가? 아주 간단하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기준으로 재부팅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훈련 코스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씀을 단순히 깨닫고 정보나 사실 정도로 많이 얻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말씀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 안의 모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말씀 앞에 몸부림치며 그 말씀으로 나의 가치체계와 사고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사실 이런 부담 없이 즐거운 말씀 공부 시간 또는 고차원의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란 수술 경과에 대한 매뉴얼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술을 한 것이 아니라 수술이 어떤 것이고, 수술에는 어떤 과정이 있고, 어떤 놀라운 기술이 숨어 있는지 상세히 알아가는 과정만 갖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마치 수술을 몇 번씩 해본 사람처럼 말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술에 대해 아는 것이지 수술한 것이 아니다. 수술에 대해 잘 배우고 깨닫는다고 해서 수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_히브리서 4:12,13

살아서 활력이 있는 날선 말씀 앞에서 나의 모든 영역이 벌거벗은 듯 드러날 때 그 말씀과 맞지 않는 나의 모든 영역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성경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고, 종국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거슬러서 하나님의 의중을 따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모두가 동행한다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유브라데 강은 넘어>윤성철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