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안 죽어요 : 부활과 하나님나라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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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진리이다. 모든 신앙의 중심과 목표가 바로 부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이 부활 하나만을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투자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라는 말로 고백하고 있다.

두 가지 부활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부활이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사망의 부활이다. 우리는 보통 생명의 부활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부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생명의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부활이요(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사망의 부활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의 부활이다(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생명의 부활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부활의 날에 우리의 모든 삶은 생명으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망의 부활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조금 성공하고 출세했다고 해서 함부로 안심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의 날에 사망의 부활로 부활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망의 부활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 이 둘째 사망의 특징은 죽지 않는 사망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사망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둘째 사망이다. 그곳에서는 죽음도 축복이 된다. 죽음으로 모든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아무리 죽음을 바란다 해도 죽을 수가 없다. 부활에는 두 가지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회복과 부흥, 부활의 능력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부활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다. 생명의 부활에는 두 가지 중요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회복의 능력이고, 둘째는 부흥의 능력이다. 생명의 부활 속에는 회복의 능력이 있다. 부활을 통해 모든 것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부활을 통해 모든 것이 회복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 세 가지 회복을 들 수 있다.

첫째, 생명으로의 회복이다.

부활을 통해 모든 죽음이 생명으로 회복된다.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죽음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슬픈 죽음이 부활의 날에 생명으로 회복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우리는 부활의 날에 예수님을 믿은 자의 모든 죽음이 생명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알고, 또 믿고 있다. 부활 속에는 죽음을 생명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둘째, 아름다움으로의 회복이다.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셨던 모든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활의 날에는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삶의 아름다움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회복될 것이다. 아름답게 회복되는 것은 비단 세상과 자연뿐만이 아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이 아름답게 회복되리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미운 사람들이 있다. 추한 사람도 있다. 악한 사람도 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부활의 날에 우리는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되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닮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부활하게 된다.

내 속에는 내가 원치 않는 ‘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못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고 살지만 나 자신에게까지 감출 수는 없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데,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나’가 내 안에 있다. 그러나 부활의 날에 그런 ‘나’는 다 없어지고 정말 마음에 드는 ‘나’로 회복될 것이다. 부활에는 모든 악하고 추한 것들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존재와 삶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셋째, 완전함으로의 회복이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이다. 불완전함에서는 불안전함이 나오고, 그 불안전함에서 모든 실패와 좌절이 생겨난다. 세상은 늘 불안전하고 그래서 세상에서의 삶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인간의 모든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회복시킨다. 완전함의 회복은 안전함으로 나타나고, 안전함을 통하여 모든 실패와 좌절이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눈물도, 애통함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날과 시한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부활의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될 테지만, 그 부활의 능력은 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부터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를 바르게, 그리고 온전히 믿으면 이 땅에서도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덧입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 부활의 능력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회복과 부흥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된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생명과 성공으로 회복될 것이다. 악함과 추함은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회복될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모든 삶은 완전하고 안전한 삶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성경이 약속한 바와 같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목회가 직업인 사람이다. 나는 목회 성공을 통해서 인생의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온전한 믿음을 통해 부활의 축복을 얻게 된다면, 현세와 내세에서 분명히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 부활의 능력을 덧입으며 살아가면 틀림없이 목회에도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과 축복은 목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 양육에도 나타날 것이다.

이런 일이 목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그곳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면 모든 어그러진 것은 바르게 회복되고, 모든 약하고 죽어가는 것은 강하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되어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사모해야 한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하기 바란다.

오직 믿음

부활의 능력을 덧입기 원한다면 이 부활의 능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부활의 능력과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돈은 귀하고 유용하고 좋은 것이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돈으로도 구원과 부활을 살 수는 없다. 세상의 그 어떤 지식이나 세상의 그 어떤 권세로도 구원과 부활을 살 수는 없다. 구원과 부활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오직 믿음의 부유함만이 부활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이 믿음이 부유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가난하고 초라한 것일 때가 많다. 믿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너무 보잘것없고 초라해서 부활의 능력을 덧입지 못한 채 참으로 가난한 삶, 구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대개 부모님들은 성에 차지 않아 한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집중하지 않고 대충대충 적당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럴 때 우리는 답답해서 아이들에게 “얘야,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 있겠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모습이, 영락없이 꼭 공부 잘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안 믿는 것은 아닌데 믿음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이 영 시원치 않은 경우가 많다. 평생을 믿어도 자라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혹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얘야, 그렇게 예수 믿어서 어디 천당 가겠느냐?”

성경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말씀한다. 그저 성전 뜰만 밟고 다닌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교회 봉사는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 봉사만 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봉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작 예수 믿는 믿음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많다. 연보를 많이 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다.

믿으면 반드시 얻는다. 그러나 믿지 않거나 믿음이 부족하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구원을 얻으면 죽어서는 물론이려니와 이 땅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이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회복될 것이고 모든 삶과 일에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회복 플러스 부흥

부활 속에는 회복의 능력뿐만 아니라 부흥의 능력이 함께 들어 있다. 부활은 단순한 회복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복만으로도 큰 은혜가 되지만 부활은 그 회복 위에 부흥을 더한다. 회복과 부흥은 하나님의 본래 창조 원리요, 원칙이다.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병에 걸려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괴롭혔던 모든 병에서 다 치유되었다. 회복된 것이다.

축구를 하다가 새끼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제자리를 찾아 붙어서 다시 온전하게 되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서 스케이트 날에 손바닥을 베인 적도 있었는데, 그 손바닥도 지금은 다 붙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주 안에서 다 회복되고 있다. 사람도, 자연도 모든 것이 다 회복되고 있다.

부흥과 성장도 하나님의 창조원리다. 밀알 하나를 심으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은 100배도 훨씬 넘는다.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 안에 있으면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편 1편에도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삶은 열매를 맺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실패하고 연약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실패와 연약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본래 하나님의 뜻과 원칙은 부흥과 성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부활의 때에 우리 삶은 단순히 회복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흥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속에 ‘Restoration’(회복)과 ‘Revival’(부흥)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활은 회복을 의미하며 부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활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이 완전하고 아름답게 회복되고, 회복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30배, 60배, 100배로 부흥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사람은 목회에 성공하게 될 것이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 성공하게 될 것이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직장생활 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하게 될 것이다. 구원과 부활의 능력은 가정에도 나타나고 세상에도 나타나며, 교회에,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데까지 이르도록, 우리는 믿음의 부유함을 사모해야 한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일하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며 기도해야 한다. 가정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직장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교회생활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믿음으로 한 모든 일에 구원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크리스천 베이직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서술한 책이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조직신학적인 공부가 한 번은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둥과 뼈대를 세우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튼튼하고 반듯한 신앙생활이 어려워진다. _ 개정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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