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클럽과는 달라야지 : 교회의 목적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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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가 없는 사람은 경주할 수 없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의 삶은 결국 방황과 방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끝까지 훌륭하고 아름답게 완수하려면 무엇보다 그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탄이 주(主)의 몸된 교회를 변질시켜 약하게 만들려고 할 때 주로 쓰는 수단이 바로 교회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교회, 목적이 변질된 교회는 더 이상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없고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교회는 이와 같은 사탄의 전략에 휘말려 교회답지 못한 교회로 전락해가기도 한다.

우리는 교회가 늘 하나님 앞에 반듯하고 아름답게 서도록,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목적이 분명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제일가는 목적은 예배

교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다. 신학적 편의상 교회를 유형의 교회와 무형의 교회로 나눈다. 유형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당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무형의 교회는 그 교회당을 중심으로 모인 교인들의 모임(시공을 초월한 우주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의 교회를 건축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형의 교회를 쉽게 예배당(禮拜堂)이라고 부른다. ‘예배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물론 무형의 교회의 목적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당연히 예배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예배는 진정 살아 있는 예배가 된다. 우리의 예배가 살아 있는 예배가 될 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 단연 힘써야 할 부분도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다.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예배가 타성에 젖어 있거나 경직된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다.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를 보라. 그 교회에는 공통적으로 예배가 살아 있다.

어느 교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봉투에 ‘예배의 기쁨을 회복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표기한 것을 보았다. 한 청년은 편지에서 “최근 예배를 드릴 때 울든 웃든, 늘 은혜를 받습니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예배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예배에는 기쁨이 있다. 예배에는 은혜가 있다. 예배에는 감동과 감격이 있다. 그것을 모르고 영적 불감증에 걸린 채 평생 교회 뜰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평생 은혜의 깊은 물을 체험하지 못하고 얕은 물가에서만 첨벙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자를 찾고 계신다. 요즘 당신의 예배는 어떤가? 요즘 교회의 예배는 어떤가?

예배라고 할 때 우리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만이 예배는 아니다. 예배를 영어로는 ‘service’라고 한다. 그야말로 예배란 하나님께 ‘service’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서비스한다는 것을 나는 다른 말로 ‘주를 기쁘시게 함’이라고 풀이하고 싶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드려지는 정규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교회생활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교회와 교인들의 삶의 목적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 중요하고도 분명한 목적을 잊지 않을 때 교회는 늘 건강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배다. 우리는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가 형식적이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주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와 교인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선교해서 미숙해지는 교회

1977년 가을 신학교 졸업반 때 친구 몇 명과 함께 수유리에 있는 영락 기도원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한경직 목사님이 친필로 쓰신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기도원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같이 “그 할아버지, 꿈도 크시네” 하며 웃었다. 5천만이라는 숫자가 황당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의 관심은 교회 성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교회 성숙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숫자를 언급하는 것을 조금은 경시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훗날 직접 목회를 하면서 한 목사님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의 진정한 관심은 교회의 성숙보다는 한 영혼의 구원에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숙한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언제나 미숙해야만 한다. 미숙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다. 미숙한 교회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을 수 있다. 오래 예수를 믿은 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얕은 물가에서만 첨벙거리기 때문에 미숙해진 교회가 있다. 또 하나는 교회 안에 이미 성숙한 교인들이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도해서 아직 신앙적으로 미숙한 교인들을 끊임없이 교회에 새로 영입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교회 수준이 떨어져 미숙해지는 경우다.

이렇게 본다면 성숙한 교회란 역설적으로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첫째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하고, 둘째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존재하는 곳이라면 교회는 끊임없이 선교해야만 한다. 교회의 목적은 선교에 있다. 그러므로 그 교회가 선교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그 교회가 성숙하고 알찬 교회라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성숙한 교회를 목표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자칫 사탄의 시험이 되기 쉽다. 성숙한 교회를 목표로 삼지 말고 선교함으로써 늘 미숙한 교회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선교해야만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만 한다. 여러 수단과 방법을 통해 선교에 힘써야 한다.

뿌려야만 거둔다

1991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중국에 있는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국교회가 그토록 놀라운 부흥을 이룩한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교회가 교회학교 교육에 열성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주효한 이유였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는 그 어떤 일보다 교회학교를 통해 어린아이들에게 말씀과 신앙을 교육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지금 장년층 성도라면 거의 모두가 어렸을 때 한두 번쯤 교회에 나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 빵을 얻어먹으러 갔든지, 아니면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받으러 갔든지, 또 여름성경학교 때 인형극을 보러 갔든지 간에 한두 번쯤은 교회 간 적이 다들 있다.

그런데 어렸을 때의 그 경험이 훗날 예수를 믿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동물에게 있는 귀소본능이 모양은 좀 다르지만 인간에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생각하게 되고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렸을 때의 일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많은 한국 사람에게 교회는 어렸을 적 고향의 기억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무의식이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라든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외로워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교회와 하나님께로 이끌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당당히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가 부흥하게 된 원인은 교회학교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때 많은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만 불이나 이만 불 정도면 예배당을 지을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보다는 돈이 더 들더라도 교인 중 한 사람을 미국이나 한국에 유학 보내라고 권했다.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특별히 미국과 한국의 교회학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후 여건을 갖추어서 중국교회에 맞게 도입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것이 예배당을 지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쉽게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온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자 목적이다.

목회에는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가 있다. 물론 거두는 목회도 중요하다. 하지만 뿌리는 목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나님의 법칙은 뿌려야만 거둔다는 데 있다. 만일 뿌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목회는 뿌리는 것보다 거두는 것이 재미있다. 그래서 많은 교인과 목회자가 뿌리는 것보다는 거두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회가 뿌리는 데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선배가 일찍이 교육을 통하여 많은 씨앗을 뿌려놓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향후 5년 후가 더 좋은 교회

주일 장년 출석이 천 명 정도 된다는 교회에서 교사 헌신예배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설교 중에 나는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았다.

“여러분의 교회는 지금이 좋은 교회 같아 보입니까, 아니면 앞으로 5년 후에 더 좋은 교회가 될 것 같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는지 대답을 못 하기에 내가 대신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이 좋은 교회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욕이었다. 욕 한마디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은 무서운 욕이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내게 오시더니 내 손을 꼭 잡으시며 “김 목사, 고맙소. 김 목사 말이 맞소. 정신이 번쩍 드는구먼” 하고 말씀해주셨다. 그 목사님은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교단의 어른 목사님이셨다. 많은 교회가 향후 5년 앞도 내다보지 않고 그저 지금 좋은 교회로 만족하는 근시안적인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 절감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았다.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가정은 교회 같은 가정이 좋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와 살림은 그 원칙과 정신이 같아야 한다. 가정에서 살림을 할 때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라. 바로 자녀들의 교육비다. 부모들은 밥만 먹고살다시피 하고 돈은 거의 다 아이들에게 들어간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이 원칙이 무시된다. 돈은 거의 어른들이 다 쓰고 아이들은 그저 밥만 먹고사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가정은 어느 정도 발전적이고 희망이 있는데, 교회는 점점 정체하고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교회는 교회학교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에 더 희망이 있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교육은 비단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교육은 평생교육의 개념으로 장년교육까지 다 포괄해야만 한다. 예배만으로 성숙한 교인들을 양성할 수 없다. 훈련받지 않은 군인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듯이, 교육받지 않고 훈련받지 않은 교인은 훌륭한 교인이 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교육은 교회의 빼놓을 수 없는 사명이자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향한 섬김과 봉사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물론 하나님은 세상과 교회를 모두 다 사랑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에 있다기보다 세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우리 안의 양과 같고 세상은 우리 바깥의 양과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는 세상을 섬기기 위함이다. 그 섬김을 통하여 저들을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 중요한 교회의 목적과 사명을 잊어버렸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교회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 시작했다. 교회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세상을 섬겨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교회 건축을 하려고 하면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심지어 반대가 지나쳐서 공사를 방해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면 교회의 대응은 어떠한가? 교회의 관심은 그들의 반대가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에 있다. 대부분의 반대는 불법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불법적이라 할지라도 일부 책임은 교회에도 있다.

지역 주민이 교회 건축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들어서면 괜히 땅값만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교회 건축을 반대하게 된다.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건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세우는 교회라면 지어봐야 헛일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는 교회가 어떻게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건강한 교회로 자라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연구하고 철저히 섬겨야 한다. 저들이 교회를 유익한 기관으로 인식하기까지 철저한 섬김과 봉사로 일관해야 한다. 교회가 들어서면 오히려 땅값이 오를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좋아하고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형제처럼 연합하고 동거하라

교회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성도의 교제’이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가장 기쁠 때는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낼 때라고 한다.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는 것보다 부모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한 형제처럼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주신다. 하나님은 시편 133편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에 바로 이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었다. 이런 점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의 매우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와 선교, 교육과 구제 및 봉사와 함께 건전한 성도의 교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지금과 같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성도 간의 교제가 아름다운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교회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배와 선교, 교육과 봉사, 그리고 성도의 교제와 같은 교회의 중요한 목적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따라 교회는 좋은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로 분류될 수 있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여행은 방랑이 될 수밖에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힘쓰고 노력한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 훌륭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크리스천 베이직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서술한 책이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조직신학적인 공부가 한 번은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둥과 뼈대를 세우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튼튼하고 반듯한 신앙생활이 어려워진다. _ 개정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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