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렇게 놀라는 감정이야말로 철학자의 특징이라네. 이것 말고 철학의 다른 출발점은 없네.”

철학함(doing philosophy, Philosophieren)은 ‘놀라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움’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는다. 몰랐던 것, 신비한 것을 만날 때 “아!” 하고 감탄한다. 놀라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놀람에 깨어 알고 싶어져서 “이게 뭐야?” 질문하는 게 철학함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가운데 ‘놀라움’이 나오고, 이 놀라움에서 ‘질문’이 이어지는 게 철학함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영원에 대한 질문을 품도록 하셨다. 철학함의 시작은 경탄을 느끼면서부터다. 그런데 경탄에서만 그치면 철학함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왜 이렇지?” 하고 물어야 한다. 지극히 분명하고도 당연한 사실들에 대해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철학은 인간이 결코 완전하지 못한 탓에 완전한 지식을 얻으려고 ‘무한’한 앎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리하여 철학이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위대하게 던졌던 질문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아르케’(arche)는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아르케’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자연 철학자의 한 사람인 아낙시만더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모든 변화하는 것의 밑바탕에는 영속적인 참된 존재가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 항구적인 것을 아르케라고 불렀다.

아르케는 처음에는 시작, 근원, 원인 등의 의미이지만, 후에는 제1원리, 원소, 지식의 원리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아르케는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다. 세상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원인이며 세상을 만든 기본적인 질료이므로 세상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인간은 왜 ‘아르케’에 대해 깊이 묻고 궁금해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파스칼의 말을 상고해보자. 그는 《팡세》에서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깨달으라! 무력한 이성이여, 머리 숙이라. 어리석은 자연이여, 침묵하라. 인간이 무한히 인간을 넘어선다는 것을 배우라. 그리하여 그대들이 모르는 자신의 참된 신분을 그대들의 주(主)에게서 배우라. 신의 말씀을 들으라.

이 구절에서 인간이 “인간을 넘어선다”I’homme passe infiniment I’homme라는 말은 파스칼의 인간관에 중요한 선언이다. 인간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불가해한 것은 그가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 즉 인간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에 그 존재의 탁월함이 존재성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파스칼은 철학의 원초적 오류는 “인간이 인간을 무한히 넘어선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데 있다고 했다. 철학은 인간을 단지 인간 범주 안에서 설명하려고 하기에 모든 철학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편에 의하면,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는 자가 가장 미련하고 교만한 자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 시 14:1a

하나님이 배제될 때 인간의 시선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 맞추어진다. 인간이 인간만 바라보면 답이 없다. 인간은 인간을 무한히 넘어선다. 인간은 세상보다 더 크고 인간보다 더 위대하다. 인간에게는 무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이는 인간 이상의 것이다. 파스칼에 의하면 철학자들은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겸허히 머리 숙여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자신의 참된 위치를 발견하라고 한다.

인간이 아르케에 대해 깊이 질문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넘어선 존재, 즉 그 가슴 속에 ‘영원’과 ‘무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원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 3:11

그렇다. 하나님이 ‘아르케’, 즉 ‘영원’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인간은 동물을 넘어선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인간과 동물이 차이가 없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동물을 훨씬, 훨씬, 훨씬 넘어선다. 또한 인간은 인간을 넘어선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그 마음에 인간 이상의 것 ‘영원’이 심겨 있다. 그래서 인간은 질문 중의 최고의 질문인 영원,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그저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고 존귀하게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너무나 신기하고 통쾌한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가 지금껏 말해왔던 철학의 ‘아르케’와 동일한 단어라는 것이다. 창세기의 ‘태초’는 히브리어로 ‘베레쉬트’인데, 이를 LXX(70인역)은 ‘아르케’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왜 성경을 ‘태초에’라고 시작하셨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의 모든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이끌어가는 기관차 구절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창세기인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이 구절의 ‘태초’도 역시 ‘아르케’이다. 하나님은 영원에 대한 질문, 즉 철학자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아르케’를 창세기 1장 1절과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가르쳐주고 계신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르케는 하나님이!”

그리하여 철학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 말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한복음 1장 3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로마서 11장 36절

† 기도
만물의 근원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원을 향한 갈망은 하나님께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그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알고자 했던 그 답변은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유의 근원이시며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할까?’ 이러한 질문 앞에 성경은 분명하고 명료하게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그 마음에 인간 이상의 것 ‘영원’이 심겨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주님 앞에 엎드리시는 당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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