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총대 멜 사람? : 교회와 선교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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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선교다. 그러므로 선교를 게을리하거나 소홀히 하는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목적을 상실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바로 이 존재 목적을 상실한 채 무능해지고 약해지고 있다.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교회의 울타리를 높이고 그것을 튼튼히 하는 데만 관심이 많은 교회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변화산에 초막을 짓듯 교회의 울타리만 튼튼하게 하여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채 그저 그 안에서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영적인 황홀경에만 빠져 있지는 않는가? 교회는 그 안에 안주하여 영적인 전투력을 상실한 무능한 군대로 전락해가고 있다.

선교회인가 친목회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한 예산이 국방 예산으로 잡혀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방은 그만큼 중요하다. 많은 예산이 국방이나 첨단과학적 기술이 집약된 전략 무기 개발에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에서 선교는 국방과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나라를 방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바로 선교이기 때문이다. 선교를 국방의 개념으로 본다면 교회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지출하는 항목도 당연히 선교 분야가 되어야 한다.

내가 시무하던 당시 동안교회에도 많은 남녀 선교회가 있었다. 동안교회 남녀 선교회의 원칙 중 하나는 예산의 80퍼센트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한다는 것이었다. 남녀 선교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도 물론 예산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가능한 한 관리 예산을 줄이고 선교 예산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교회의 경우, 소속 남녀 선교회가 너무 잡다한 일들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잡다한 일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선교의 사명이 약해지고 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많은 교회의 남녀 선교회에서는 선교비보다 친교와 같은 조직 관리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되고 있다. 실제로 어느 교회의 선교회가 50퍼센트 이상을 선교비로 쓰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많은 교회의 남녀 선교회는 남녀 친목회로 그 이름을 바꾸어야만 한다. 물론 남녀 선교회에도 건전한 의미의 친목이 있어야 한다. 회원 간의 친목도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다. 그러나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다. 좀 더 중요한 일이 있고 그만 못한 일이 있다. 그 우선순위가 바뀌면 진정한 의미의 선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나 남녀 선교회 모두 선교의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선교 효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선교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선교에 대해 전투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교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교회가 부흥 성장하고 있다. 예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하며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당 짓는 일도 뒤로하는 교회, 에어컨도 틀지 않는 교회도 있다. 물론 지나친 것도 문제가 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로서는 선교에 관해 좀 더 전투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좀 더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선교 전략이 없다

선교를 전투에 비유한다면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는 선교를 위한 전략을 개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가 바로 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똑같이 100만 원을 써도 연구하고 전략을 짜서 쓰면 좀 더 효율이 높아진다. 생각 없이 과거의 습관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예산을 사용하고 집행한다면 자연히 선교의 효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본래부터 선교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세계적으로도 한국교회처럼 좋은 선교 전략으로 효과적인 전투를 치른 교회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효과적인 선교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좋은 효과를 거두었던 선교 전략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농어촌 교회 및 미자립 교회의 지원이다.

아마 한국교회처럼 농어촌 교회나 미자립 교회를 적극 지원하는 교회도 세계에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설립되면 으레 더 약한 교회를 지원하려고 한다. 아직까지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교회라도, 한 달에 5만 원, 10만 원씩 보태어 더 약한 교회를 돕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정신과 전략은 참으로 소중하고 매우 효과적이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방방곡곡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둘째, 군 선교다.

군 선교도 한국교회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효율적인 선교 전략 중에 하나다. 한국교회는 군 선교에 아주 열심이다. 군목 제도를 창설하여 군목을 파송하고 부대마다 교회를 세우도록 지원하는가 하면, 군목들이 효과적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승용차까지 지원해줄 만큼 적극적이었다. 한국교회가 가장 열심을 낸 선교 중의 하나가 바로 군 선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 선교는 대단한 황금 어장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외로울 때 군목과 군종을 통하여 군인들을 위로하고 섬기게 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군 선교였고, 그와 같은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군 선교는 예수님 오실 때까지도 유효한 효과적인 선교 전략 중의 하나다. 군 선교 전략을 고루하다고 생각하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유지해야 하겠다.

셋째, 학원 선교이다.

군 선교 못지않게 중요하고 효과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가 학원 선교다. 엄밀히 말해서 학원 선교는 한국교회가 개발한 전략이 아니라 해외 선교사들이 개발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독교학교에서 교육을 위주로 선교했던 전략은, 교육열이 높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져서 대단한 선교 효과를 거두었다. 학원 선교가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기여한 공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다.

미션스쿨 계통의 어느 여자 중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계신 장로 한 분을 알고 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학생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크게 낙심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 분을 위로하면서 나는 이런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다.

“장로님,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저 녀석들이 암만 그래도 코가 꿰였습니다. 아무리 말을 안 듣는 것 같아도 죽기 전에 80퍼센트는 꼭 예수 믿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어느 날 그 학교에 여선생님 한 분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그 선생님의 어머니가 바로 그 여고 출신이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여선생님의 어머니를 통해 몇십 년 전 그 학교를 졸업한 동창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40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과연 그들 중 몇 명이나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40명 중 33명이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내 말이 맞았다. 정말 미션스쿨 계통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중 80퍼센트 이상이 예수를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학원 선교는 이처럼 효율적인 선교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떠난 이후, 한국교회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교회가 한참 부흥하고 발전할 때에도 우리 손으로 세운 기독교학교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더 늦기 전에 학원 선교에 다시금 눈을 돌려야 한다. 힘이 있는 교회는 예배당만 짓지 말고 학교도 지어야 한다. 학교를 세울 만하지 못하면 지금 있는 기독교학교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학교에 눈을 돌린다면 21세기에도 교회는 변함없이 부흥하고 성장할 것이다.

넷째, 사회 선교이다.

교회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참으로 가난하고 어려움이 많았던 나라였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였다. 또 전쟁으로 많은 상처가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교회는 이 가난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앞장서서 보듬고 살펴주었다. 고아원과 모자원을 세우고, 가난한 이웃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공급해주는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전략적인 사업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아주 효과적인 선교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교회였다. 그런 점이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이끄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어느 순간 한국교회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 또한 교회에 대해 관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 점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정체와 퇴보의 길을 걷게 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에 반해 천주교는 다른 어떤 종교 단체나 교단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그들을 섬기고 있다. 곳곳에 무료병원을 세우고 노숙자들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라든가,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다.

그 결과 개신교가 정체와 답보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도 천주교는 계속 성장했다. 천주교의 성장 배경으로 꼽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는 사회 선교가 전략적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올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 발전하게 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선교를 아주 전략적으로 잘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고 성장하면서, 이제 한국교회는 구체적인 선교 전략에 둔해지고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는 일은 둘째 치고, 아직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들을 서서히 포기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학원 선교나 사회 선교는 아직도 유효한 선교 전략인데, 많은 교회가 그런 측면의 선교에서 점차 손을 떼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는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계속 펼쳐나가야 한다. 또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선교 전략을 개발해내야만 한다. 나는 선교를 전공한 선교 전문가는 아니지만, 비즈니스 분야에 전략적인 의미를 두고 선교하려고 노력해왔다.

비즈니스 선교

10년 동안 섬기던 동안교회를 사임하고 쉰이 넘은 늦은 나이에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했다. 개척은 새 부대와 같은 신선함과 새로움을 허락해주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 계속 머물러 있었으면 생각지 못했을 것들이 보였다. 그중에 중요한 하나가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나온다. 포도원 주인은 새벽부터 오후 5시까지 틈만 나면 시장에 나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낸다. 오후 5시에 들어간 사람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포도원 주인은 그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급하였다.

그것은 충동적인 일이 아니었다. 포도원 주인은 본래부터 그럴 작정이었다. 온종일 일하고 같은 품삯을 받은 노동자가 항의할 때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그 말에 참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뜻이라고?!’

나는 그 비유의 말씀을 새롭게 읽으며 ‘이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위하여 일꾼을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일꾼을 고용하여 품삯을 주고 싶어서 포도원을 경영한 사람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 포도원 주인의 비유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를 설명해주기 위해 사용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천국은 마치”라는 말로 시작된다.

‘맞네, 그럼 하나님나라네. 그런 사고방식과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기가 하나님나라지!’

마태복음 20장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비즈니스 선교’였다. 나는 비즈니스는 철저히 포도원을 경영하기 위하여 일꾼을 고용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일꾼을 고용하여 품삯을 주고 싶어서 포도원을 경영하는 식의 비즈니스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었다. 일반 기업은 빵을 팔기 위하여 고용하지만, 사회적기업은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프로젝트

높은뜻숭의교회는 처음에 학교 강당을 빌려서 교회를 시작했다. 출석 교인이 3천 명쯤 되었을 때 건축헌금을 당회에 제안했다. 장로님들은 내가 예배당을 지으려고 생각한 줄 알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한 건축헌금 이름을 들으시고는 다들 웃으셨다. 내가 제안한 성전 건축헌금은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헌금’이었다.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하여 그 돈으로 예배당을 짓지 않고(나중에 짓고)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높은뜻숭의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프로젝트가 되었다. 교인들이 기쁨으로 동의해주어서 200억 원의 헌금이 작정되었다. 그 돈으로 열매나눔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제일 먼저 탈북자들의 자립을 위한 공장을 세웠다. 탈북자 23명을 고용하여 메자닌아이팩이라는 박스 제조 공장을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첫 흑자를 기록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130개 언론이 이를 보도하였다. 이에 감동 받은 정부의 지원으로 메자닌에코원이라는 커튼 공장도 세웠다. 두 공장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잘 생존해오고 있다.

공장을 시작할 때 탈북자들에게 전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저들의 자활과 자립을 돕고 섬기겠다는 결심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원칙을 지켰다. 그러면 저들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목사가 장사꾼이냐며 못마땅해하는 목회자들이 있었다. 목사가 복음을 전하고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공격성 발언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밭을 가는 것입니다. 밭을 갈기도 전에 씨를 뿌리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라고 합니다.”

내 전략은 성공했다. 우리 공장 출신 탈북자 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참 많다. 공장을 시작한 지 4년쯤 되었을 때, 직원의 약 40퍼센트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를 믿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탈북 청년들을 위하여 블리스 앤 블래스라는 커피 전문점을 몇 년 동안 운영한 적도 있다. 그때 점장으로 있던 탈북 청년이 꽤 오랫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전도하지 않았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며 가까이하였다.

2011년 11월, 그 점장 청년이 페이스북에 기막힌 글을 올렸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북에 있을 때부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도, 형제에게도, 부모에게도…. 그런데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자꾸 누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하는 대상이 하나님이시다. 2011년에 제일 잘한 일은 하나님을 만난 일이다.

피피엘 재단과 백사장 프로젝트

교회를 은퇴하면서 부모님의 유산을 팔아 피피엘(People & Peace Link)이라는 재단을 세웠다. 피피엘 재단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는 백사장 프로젝트이다. 탈북자와 사회적 취약계층민 100명을 사장으로 만들겠다는 돈키호테와 같은 프로젝트다.

후원을 결정해준 대기업과 미래나눔재단 그리고 남북하나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탈북자들에게 약 7개월간 직업 교육을 하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친구들을 뽑아 일본식 전통 라멘 가게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이야기를 담은 라멘’이라는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재단이 약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 정도를 먼저 투자하여 가게를 열어주고 그들에게 가게 운영을 맡긴 후 약 5년에 걸쳐서 그 돈을 벌어 갚게 하는 것이다. 하루 매상 80만 원 정도를 올리면 자기가 한 달에 약 2백에서 3백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사용하고 5년 안에 1억 5천만 원 정도의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러면 그 가게를 그 친구 앞으로 넘겨주는 프로젝트다.

어린이 대공원 쪽에 이야기를 담은 라멘 세종점이 있다. 2년 만에 1억 5천만 원을 다 상환하고 2019년 4월에 가게 이양식을 할 예정이다. 우리 재단의 대박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장에게 가게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물었다.

“벌면 당신 것, 망하면 재단 것. 사장님은 우리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장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제가 목사잖아요?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이잖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믿어요. 그런데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사는 겁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실패하여 문 닫은 공장과 카페와 라멘 가게들이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매달렸더니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한 것 이상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업은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선교는 실패를 통해서도 성공하고, 성공을 통해서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선교의 방법과 도구가 있다. 목회하면서 그것들을 실험해보고 실천해보았다. 그런데 제일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비즈니스처럼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사용하기 좋은 선교적 도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사람들은 비즈니스 선교를 BAM(Business As Mission)이라고 부른다. 나는 BAM이라는 말보다 굳이 쓰자면 BIM이라고 쓰고 싶다. “Business Is Mission”이란 표현이 더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포도원 주인 같은 마음으로 사업을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훨씬 더 빨리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보급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몇 나라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도 가장 강력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최고의 보급’을 들 수 있다. 세계에서 미국만큼 자국 군대에게 최고의 것으로 보급해줄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한 보급이 가능한 나라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다. 미국의 보급도 하나님나라의 보급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세상 최고의 보급은 하나님나라의 보급이다. 그 보급을 받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하고 또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하나님나라의 보급을 누구에게 하시는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십자가의 군병으로 헌신한 자에게 하신다. 가장 훌륭하고 막강한 보급은 그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 군인에게 해주신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에 소명을 가지고 선교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최고의 것으로 보급해주신다. 그것은 개인이나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막강한 보급을 통해서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고 세상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선교의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전투기도 주시고 미사일도 주신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크리스천 베이직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서술한 책이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조직신학적인 공부가 한 번은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둥과 뼈대를 세우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튼튼하고 반듯한 신앙생활이 어려워진다. _ 개정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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