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얼굴을 구합시다” – 유기성 영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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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는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얼굴을 갈망하는 마음은 더 커져갑니다.

고등학생 때 중고등부 예배에서 전도사님이 고후 13:5을 본문으로 예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신다고 설교하였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제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이해도 되지 않았고 믿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두려웠습니다. 제가 버림받은 자라는 증거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척 주님이 제 안에 계신 척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비참한 심정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 말씀 때문에 ‘제 안에 거하시는 주님’에 대하여 영의 눈이 뜨인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제 갈망이 되었고 유일한 소원이었으며 기쁨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어찌 주님의 얼굴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대신 져 주셨습니다.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라”
“예수님 안에 거하라”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살라”

성경을 묵상할수록 성령께서 제 안에서 강권하심을 느낍니다.

참으로 두렵고 슬픈 것은 한국 교회 안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친밀한 동행하는 일이 너무나 낯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모르겠으니 모른다고 한 것일테니 잘못이라 할 수 없겠지만 우리의 영적 실상이 이 정도가 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갈망은 주님의 얼굴입니다. “주여 언제까지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숨기시렵니까?”

시 88편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성도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탄식의 기도입니다.
시 88: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이 기도야 말로 한국 교회 모든 성도들의 기도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보고 싶어지는 것은 그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갈망하는 것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자 하는 영혼의 갈망입니다.

이해가 안되고 체험이 되지 않아도 성경의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체험되고 확신이 되기를 갈망하면 반드시 성령께서 성경의 약속이 진리임을 알게 해 주십니다.

저는 때때로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집회에서 저를 소개하시는 목사님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 유기성목사님입니다” 하시고는 “24 시간! 24 시간 말입니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와” 하고 박수를 치는데, 강단에 올라가는 저는 난감했습니다. 마치 이상한 사람, 유별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분명히 저를 잘 소개해 주시려는 의도였겠지만, 제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 것이 유별난 것인가?”

어느 목사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사람들 부담스럽게 하지 마세요! 유기성목사님이니까 매일 일기도 쓰며 주님과 친밀하려는 거지 누구나 그럴 수는 없어요”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과 저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셔서 영생을 주셨고 주님이 제 안에 거하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 거하시니 저도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살려는 것입니다. 저만 그런 은혜 받았고 목사님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저만 주님과 친밀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한국 교회 안에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