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변화-분노의 살인자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화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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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경험을 통해, 바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자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로 변화된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종교분파인 바리새파 출신이었다(행 26:5). 그는 당대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랍비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행 22:3), 그가 공개적으로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갈 1:14)고 말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엄격한 전통에 대한 그의 급진적인 헌신을 능가할 만한 순종은 없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첫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젊은 바울은 그 현장에서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의 옷을 들고 있었다(행 7:58).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수동적으로 옷을 들고 있던 사람에서 공격적으로 핍박하는 자로 변모하였다.

바울의 세계를 전복시킨 사건

바울의 전도여행 동료요 여행기(사도행전)의 저자이자 주치의였던 외과의사 누가는 세 번에 걸쳐서 바울의 세계가 전복된 사건을 기록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바울은 이 위협적인 기독교의 “도(道)”가 사실이라면, 자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자신의 “의”를엄격한 율법 준수에서 찾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율법에 대해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빌 3:6). 당대 사회에서는 이런 성취는 큰 “유익”이 있었으며(빌 3:7),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뛰어났다(갈 1:14). 만약 기독교의 도가 진리라면(만약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면), 그것이 바울 자신의 자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자랑은 무의미해졌다.

바울이 북쪽 다메섹으로 가서 살인적인 핍박을 감행하기로 결심하자,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바울의 세계를 뒤집어버리셨다. 바울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 순간을 위해 자신을 선택하셨다고 믿게 되었다(갈 1:15).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맞닥뜨린 위기(바울의 회심사건)를 세 번 기록하고 있다(9, 22, 26장).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 9:3-9).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바울에게 보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행 9:15-16).

바울 자신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5-16).

 바울의 변화가 널리 알려지다

바울의 회심 소식은 그 근방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갈 1:13, 23-24).

그리스도를 향해 회심하기 전과 후의 그의 공적인 삶을 보고 안 사람이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살인자에서 사랑하는 자로의 그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회심 경험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단지 공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극적이고 공적인 변화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핍박한 살아계신 예수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이 만남을 통해,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이 만남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박해자가 이제는 그가 미워했던 것을 전하는 최초의 전파자(spreader)가 된 것이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복음을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3-9).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

바울을 사랑하게 만든 모든 것이 바로 이 변화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이 모든 나의 사랑이 거대한 속임수나 날조에 기인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가장 심오한 놀라움과 존경을 보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든지 할 것이다. 그의 편지에 나타난 인간의 영혼은 미혹된 광신자나 기만적인 사기꾼의 영혼이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주로 바울의 진정성을 믿는 이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출처 : 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