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은 불신도 기복도 아닌 기쁨의 헌신이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 삼하 6:12

웃사가 죽임을 당한 이후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은 잠시 보류된다. 거의 포기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앞이 캄캄했다.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해나가야 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분명 받아주실 거라고 확신했던 예배가 거절당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왕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윗은 갑자기 덮친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으로 주저앉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그런 다윗의 심장에 또다시 예배를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킨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로 인해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이 무엇이길래 상처 입은 심장을 또다시 열정으로 흥분시켰을까? 그 소문 덕분에 하나님의 좋으심을 간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인자하심과 자비로우심에 대한 기억이 문득 들려온 그 소문 때문에 조금씩 꿈틀거리며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드디어 하나님의 인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우리 삶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면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이 ‘하나님,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요?’는 둘째 문제다. 즉 고통과 아픔, 눈물과 예상치 못한 사고와 질병,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사람 안에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은 ‘하나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러십니까?’라고 하는 원망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때로 이런 음성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옆집은 잘되게 하신다.’

똑같이 하나님 믿고, 똑같이 예배하고,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나는 고난을 받고 옆집 사람은 잘되는 것이다. 그러면 배 아파해야 할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의 음성이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왜 선을 베푸겠느냐?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번 생각해보아라.’

다윗에게도 회개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시는 음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후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모든 절차를 진행하는 다윗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다윗은 서기관들을 불러 옛날엔 어떻게 했는지 읽어보게 하고 깨달았을 것이다.

‘아, 이것이 잘못됐구나. 내가 언약궤를 수레에 실었구나.’

그리고 레위인들의 어깨에 메어 성경이 요구한 대로 언약궤를 이동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인격이 이상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기억해낸 것이다.

주님, 잘못된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사,
회개하며 돌이키게 하소서. 

예배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먼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다. 예배의 가장 우선적인 토대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이 모든 말씀이 무슨 해당사항이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동일하게 또 한 가지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히 11:6). 하나님이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특히 뭔가를 준비하는 사람들,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이 이 말씀을 참 많이 좋아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 말씀에 대한 이해를 조금 교정하면 좋겠다. 이 문장에서 주된 관심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아니라 ‘주시는 분’에게 있다는 것이다. 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복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다윗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다윗은 오벧에돔이 복 받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이 나쁜 분이 아니셨어. 그분은 선하시고 풍요로운 분이셔. 그분은 채우시는 분이야. 그분은 복 주시는 분이야. 그러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아, 내가 잘못했구나!’

이것이 절실히 깨달아지면, 그 깨달음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자원하는 심령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감정과 성품과 인격과 기준이 불안정한 분이 아니시라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진리의 하나님, 우리가 신뢰할 수밖에 없는 분이시란 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아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예배의 원칙은 불신도, 기복도 아닌 기쁨의 헌신인 것이다.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 불신은 예배의 본질에 어긋난다. 하나님의 복만을 구하는 기복도 예배의 본질에 어긋난다.

우리는 복이 아니라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이심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그분은 신실하신 분, 공의로우신 분, 선하신 분,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다. 그분을 바라보면 그분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러면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 된다.

† 말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요한복음 4장 23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브리서 11장 6절

† 기도
하나님, 그동안 제가 드렸던 예배를 돌아봅니다. 매번 습관적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예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구하기만 하고 받기만을 바랐습니다. 예배 드림으로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복 자체가 아니라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으로 인해 기쁘게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기쁨의 헌신 속에 나아가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기대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 되지는 않았나요? 혹은 너무 많은 기대 속에 복 주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만으로 인해 기쁘게 예배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함께 해주시면 개척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