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 둘째 딸이 한창 사춘기를 보내던 때였다. 한바탕 소란을 떨고 마음이 상해서 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데 아내가 따라 들어왔다. 손에는 아이들의 어렸을 때 사진이 담긴 몇 권의 앨범을 들고서. 그리고 사진들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예뻤는데, 이 녀석들이 언제 저렇게 큰 거야….”

아내도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나도 슬며시 옆에 앉아서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예민해진 사춘기의 딸들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애들 앞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수도 없이 눌러댔던 시절이 생각났다.

애들이 한밤중에 깨서 울면 못 들은 척 버티다가 일어나 우유를 먹였다. 그러면 내 품 안에서 우유병을 물고 잠든 모습에 가슴이 터질 듯 행복했다. 그리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안고 있으려고 어두운 방안을 서성거렸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수많은 부모들이 겪는 그저 평범한 마음일 뿐이다. 그런데 잠시 잊고 있었다.

방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조용히 걸터 앉아본다. 그사이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아빠에게 화가 나서 잠든 척하는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미안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랑해….”

꽤 당당하게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순간, 내 마음은 다시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이처럼 흘러가버린 시간은 ‘멈춤’(pause)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되고, 사랑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 된다. 마찬가지로 멈춤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한다.

이미 우리는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는 데 익숙하다. TV를 시청하면서 저녁을 먹고, 휴대폰으로는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페이스북(facebook)을 확인하고, 음식 사진을 찍어서 거기에 올리고, 그동안 가족들과 하지 못했던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컴퓨터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고 작업하듯이 살면서도 여러 창을 열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중에 하나님을 위한 창 하나도 열려 있다. 그러나 친밀함은 그렇게 주어지지 않는다. 친밀함을 원한다면 불편해도 다른 창들을 먼저 닫아야 한다. 멈춤은 친밀함을 거부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거룩한 선택이다.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들이 누리던 축복을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서늘해지던 저녁 시간에 그 동산에 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니셨다. 그러나 죄를 범한 후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숨는다.

죄는 언제나 친밀한 관계를 망치고, 깊은 교제를 거부하게 만든다. 죄는 투명하고 진솔하며 풍성한 관계가 아닌 그저 피상적이고 얕은 관계로 만족할 수 있다고 우리를 속인다.

멈춤은 죄의 본성을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친밀을 향해 나아가는 대담한 선택이다.

† 말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시편46편 10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 출애굽기 14장 13절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 시편 27편 4절

† 기도
나의 일, 세상 일에 집중하는 나의 삶을 멈추게 하시고 하나님께 집중하여 친밀함을 누리는 삶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세상에만 시선을 두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멈추세요!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세요! 그게 바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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