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을 통해서 많이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말이 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도전 정신으로 가득한 말이다. 아직 끝이 아니란 것이다.

도전을 멈추면 변질된다. 이제 두려움의 벽을 깨고 일어나 도전해야 한다. ‘도전’이라고 해서 모두가 에스더처럼 목숨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면서 뭔가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작은 두려움들의 벽을 깨는 삶의 작은 도전들이 모여서 내 인생에 커다란 도전이 되는 것이다.

도전이 우리를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도전하는 인생은 타락하지 않는다. 도전하는 교회는 변질되지 않는다. 믿음은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담대한 도전과 관련하여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하게 했던 에스더의 도전 정신의 물꼬가 어디로 이어졌는가?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에 4:16)

금식하며 중보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 흐른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도전 정신을 갖되, 우리가 가진 무언가로 도전하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더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56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말씀을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에 불과한 자가 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 56:4, 현대인의성경)

정말 놀랍도록 담대한 고백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시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이 고백은 놀랍게도 인간적으로 볼 때 사람을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대적에게 붙잡힌 상황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에 불과한 자가 자신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이 이것이다.

두려움이란 자기를 의지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나도 이것을 피부로 느낀다. 내 안에서 믿음이 작동되면 내가 지고 있는 짐이 하나도 무겁지 않다. 내가 처한 상황이 전혀 두렵지 않다. 어떤 독한 말로 내게 해코지를 하려 해도 전혀 상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인간적인 나약함이 찾아오면 숨조차 쉴 수가 없다. 내 어깨에 지워진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두렵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에는 전혀 없던 두려움이 나약한 나 자신의 모습이 부각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시편 56편의 다윗의 선포를 나의 선포로 고백하려고 애쓴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에 불과한 자가 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이 축복이 임한다.

지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가? 두려움이란 내가 나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다윗의 선포를 당신의 선포로 고백하라. 이 담대한 선포가 우리 모두의 입술에서 동일하게 고백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편한 길, 쉬운 길이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도전의 길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말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여호수아 1장 9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 이사야 12장 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 에베소서 3장 12절

† 기도
주저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것부터 도전하기 원합니다. 제힘이 아닌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도전의 길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결단하고 움직여야 하지만 망설이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 안에 두려움의 벽을 깨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결단해보세요


▷함께 해주시면 개척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