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 다이어트 안 하면 죽는다고 한다.

그동안의 불규칙적인 잠과 식사가 불안하던 참이었다. 의사가 정기적인 운동과 식습관 개선이 없으면 정말 큰일 난다고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신체 나이 그래프를 보여주는데 나도 놀랍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헬스클럽에 등록한다.

일 년 치 회비를 내고 당장 운동을 시작한다. 그날 밤 허리가 아프다. 무릎도 삐걱거리는 느낌이고 팔, 다리, 목, 관절들이 다 뻐근하다. 파스를 찾아 뒤척거리다가 좀 늦게 잠들었는데, 눈떠보니 또 8시다!

내 얘기는 아니지만 남 얘기 같지도 않은 다이어트 실패담이다.

기도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은 다이어트와 닮았다. 다이어트만큼이나 기도 역시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도는 습관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습관화하려고 기도 책도 사서 읽는다.

특새 같은 새벽기도 습관화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려고 한다. 아예 전날 밤에 교회 기도실로 베개를 들고 가기도 해본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다. 아니 작심일일이다. 하루 이틀 정도 기도하다가 눈떠보면 또 아침 8시다.

팩폭(팩트폭격)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반가운 보약이다.

얼마 전 “헬스클럽이 돈 버는 진짜 이유”라는 글을 읽으며 낄낄댔다. 특히 공감한 부분은 ‘동기의 부재’였다. 다이어트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건강해야만 하는 이유가 별로 찐하지 않아서다. 운동을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라면 동기 부족이다.

다이어트를 안 하면 ‘진짜×100만’으로 안 되는 찐한 이유가 있어야 작심삼일을 끝낼 수 있다.

극단적 예로,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당신이 뚱뚱해서 싫다”라고 하며 헤어지자고 했다든지, 지난 10년간 실패하던 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올랐는데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든지, 한 달 안에 정해진 몸무게를 빼면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될 수 있다든지 이런 동기가 필요하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를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가끔은 기도할 수 있지만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 반복과 지속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이 찐한 동기가 없어서다. 진짜 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어서다.

나의 기도 스승인 어머니는 홀로 남매를 키우며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못 배우고 가난한 여자가 혼자서 가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오늘날도 힘들지만 1970년대는 더했다.

그녀는 아침에는 파출부였고, 낮에는 식당 배달원, 밤에는 화장실 청소부였다. 그러면서 살림도 했다.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도 채 안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월세 한 번 제때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도했다. 아니, ‘그래서’ 기도했다. 잠잘 수 있는 4시간을 쪼개서 새벽기도, 산기도, 철야기도를 다녔다. 내가 봤다. 말문이 터지기 전부터 봐왔다. 어머니가 원래 특별하거나 대단한 기도꾼이어서가 아니었다.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였다.

죽을 것 같은 생활고와 살려야 하는 자식들 때문이었다. 기도해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기도했다. 그녀는 동기가 확실했다.

기도 내용의 대부분은 자녀를 위한 거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일을 다니느라 종일 집을 비웁니다. 취학 전 어린아이 둘이 집에 홀로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이들을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늘 적은 돈으로 먹이다 보니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이들의 발육상태를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삶은 죽음이 내리쬐는 사막 같았다. 혼자라면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생명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있어서 살아야만 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생명도 내줄 사랑이 있었다. 거기서 ‘지키는 기도’의 샘이 터졌다. 덕분에 자녀들은 영적 오아시스에 풍덩 잠겨 안전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는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도로 지키셨다(요 17:1-26). 그분은 제자들을 기도로 뽑으셨고, 기도로 이끄셨으며, 기도로 보내셨다(막 6:32-46, 눅 6:12,13, 요 17:18). 사랑 때문이다.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기도로 지키셨다(요 17:26). 그리고 지금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계신다(롬 8:26,27). 그러기에 지키는 기도의 원류는 예수님이시다.

기도 이벤트는 쉽다. 그러나 기도 습관화는 어렵다. 그러려면 반복해야 한다. 한두 번 빼먹는 기도는 습관 만들기의 적이다. 지속성이 습관화에 비례한다.

여기서 동기가 작용한다. 미적지근한 동기는 ‘퐁당퐁당 기도’(빼먹는 기도)를 만든다. 지속하려면 동기가 확실하고 뜨거워야 한다.

예수님의 지키는 기도로 제자들이 바뀌었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었다(행 24:5). 내 어머니는 지키는 기도로 자신의 환경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가끔 하는 기도나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적당히 기도해도 되는 적당한 수준의 신앙생활이란 없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건 그분과 같은 언행을 요구한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처럼 사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정상’ 범주에 넣기 힘들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진”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후 6:6,7).

크리스천은 평균 범주에 들지 않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정의된다(고후 6:8-10).

세상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크리스천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상’ 영역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이름뿐인 크리스천’, 혹은 ‘기도하지 않는 크리스천’이다.

당위성과 열정이 있을지는 몰라도 기도가 습관이 되기까지 반복할 수준의 동기가 부족하다. 그런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하고 뜨거운 인식이다. 또한 거기서 터져 나오는 기도를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기도가 아니면 절대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매번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충 기도생활을 하다가는 영성도 인생도 대충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름뿐인 신앙인의 대열에 들어가 그럭저럭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기도가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알면 당신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 말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골로새서 4장 2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 요한복음 14장 13절

† 기도
하나님, 당위성과 열정만이 아닌 기도가 습관이 되길 원합니다. 기도가 아니면 절대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을 제 안에 심어주소서. 대충 기도생활하다가 영성도 인생도 대충 마무리되는 삶이 아니라, 뜨겁게 인식하며 기도만이 살 길임을 확신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기도가 아니면 절대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처럼 대충 기도생활을 하다가는 영성도, 인생도 대충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당신은 원하십니까? 이름뿐인 신앙인의 대열에서 나오기를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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